1장. 탄소중립 시대, 자동차가 바뀌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커지면서, 전 세계가 ‘탄소중립(Net Zero)’ 실현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교통 부문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15~20%를 차지하며, 그중 상당 부분이 자동차에서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자동차 산업은 지금 ‘내연기관에서 전기 구동’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겪고 있습니다.
전기차(EV)는 주행 중 배출가스가 없다는 점에서 ‘친환경차’로 불립니다. 반면 내연기관차(ICE, Internal Combustion Engine)는 휘발유나 경유를 연소하며 이산화탄소(CO₂)를 직접 배출하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전기차는 정말 내연기관차보다 탄소배출이 적을까?” 이번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숫자와 사례를 통해 명확히 알아보겠습니다.
2장. 단순 주행만 보지 말자 – 탄소배출의 전체 과정
자동차의 탄소배출을 비교할 때 흔히 “주행 중 배기가스가 나오느냐”만을 기준으로 보지만, 진짜 친환경 여부는 ‘전주기(Life Cycle Assessment, LCA)’로 판단해야 합니다.
전주기 평가란 차량이 만들어지고 폐기될 때까지, 즉 제조 → 운행 → 유지보수 → 폐기 및 재활용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을 합산해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내연기관차는 제조 시에는 비교적 탄소가 적지만, 연료를 계속 태우기 때문에 운행 중에 막대한 탄소가 발생합니다. 반면 전기차는 제조 과정에서 배터리 생산으로 인해 탄소가 많지만, 주행 중 배출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총 배출량이 줄어듭니다.
3장. 제조 단계 – 배터리의 그림자
전기차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배터리 생산 단계’입니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희귀금속을 채굴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이로 인해 탄소배출이 증가합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전기차 1대를 제조할 때 평균 8~12톤의 CO₂가 발생하며, 이는 동급 내연기관차(약 5~6톤)보다 약 30~60%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초기 비용’일 뿐입니다. 전기차가 3만km 이상 주행하면, 이 제조 단계의 탄소를 모두 상쇄하기 시작합니다.
배터리 제조 기술이 발전하고 재활용 체계가 정착될수록 이 탄소 격차는 점점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4장. 주행 단계 – 진짜 차이가 시작된다
내연기관차는 연료를 태워 움직입니다. 휘발유 1리터를 연소할 때 약 2.3kg의 CO₂가 발생하므로, 연비가 12km/L인 차량이 1만km를 주행하면 약 1.9톤의 CO₂를 배출합니다.
반면 전기차는 주행 중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습니다. 다만 충전에 사용된 전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간접 탄소가 발생합니다.
만약 전력이 석탄 중심이라면 1kWh당 약 0.5kg의 CO₂가 발생하지만,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을수록 전기차의 실제 탄소배출은 급격히 감소합니다.
2025년 한국의 전력 구조 기준으로 보면,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약 60~70% 낮은 탄소배출을 보입니다. 즉, 동일한 주행거리(1만km 기준)에서 내연기관차가 1.9톤을 배출할 때, 전기차는 약 0.6~0.8톤에 불과합니다.
5장. 유지보수 단계 – 단순함이 만든 효율
전기차는 엔진오일, 머플러, 점화플러그 등 유지보수 항목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정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최소화됩니다. 또한 회생제동 시스템 덕분에 브레이크 패드 마모가 줄어들고, 전체 부품 수가 적기 때문에 부품 제조와 교체로 인한 탄소가 적습니다.
반대로 내연기관차는 주기적으로 엔진오일을 교환하고, 연료 필터, 냉각수, 타이밍벨트 등 소모품 교체가 꾸준히 필요합니다. 이러한 유지보수 과정에서도 연평균 약 0.1~0.3톤의 탄소가 추가로 발생합니다.
6장. 폐기 단계 – 배터리의 재활용이 관건
전기차 배터리는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이 아닌 ‘자원’으로 재활용됩니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은 재추출이 가능하며, 현재는 폐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하는 기술도 발전 중입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금속 부품은 재활용 가능하지만, 엔진오일, 배기 시스템 등은 폐기물로 남아 탄소저감 효과가 낮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전기차의 재활용 잠재력이 훨씬 큽니다.
7장. 실제 비교 예시
예시 1: 도심 출퇴근형 운전자 김모 씨
서울 도심에서 하루 40km를 출퇴근하는 김모 씨는 기존 휘발유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했습니다. 1년 주행거리 약 12,000km 기준으로 탄소배출량을 비교해봤습니다.
- 내연기관차: 약 2.3톤 CO₂ 배출
- 전기차: 약 0.8톤 CO₂ 배출
연간 약 1.5톤의 탄소를 절감했습니다. 이는 성인 한 명이 1년 동안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량 절감과 맞먹는 수준이며, 나무 200그루를 심는 효과와 동일합니다.
예시 2: 장거리 출장형 운전자 박모 씨
부산에서 수도권까지 자주 출장을 다니는 영업직 박모 씨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불편함 때문에 하이브리드 차량을 선택했습니다. 월 2,000km를 주행하는 기준으로 비교하면, 하이브리드는 동일 배기량의 휘발유차보다 약 35%의 탄소를 줄입니다.
하지만 박씨가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이 매달 2,000km를 주행할 경우, 전기차에 비해 약 0.4톤 정도의 추가 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결국 충전 인프라가 확보된다면 전기차가 더 높은 효율을 보이지만, 현재는 하이브리드가 ‘현실적인 친환경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8장. 전력원과 국가별 차이
전기차의 탄소배출은 전력을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석탄 발전 비중이 높은 지역에서는 전기차의 탄소 절감 폭이 줄어들지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전기차의 이점이 압도적으로 커집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원자력 중심 전력망으로 전기차의 탄소배출이 매우 낮습니다(1km당 15g 이하). 반면 미국의 일부 석탄 중심 주에서는 1km당 120g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한국은 LNG 발전 비중이 높아, 전기차의 평균 배출량은 약 70g/km로 내연기관차(약 180g/km)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합니다.
9장. 탄소 균형점 – 언제부터 전기차가 더 친환경일까?
전기차가 제조 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더라도, 주행하면서 이를 얼마나 빨리 상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대부분의 연구 결과, 전기차는 약 주행거리 3만~5만km 시점부터 내연기관차보다 누적 탄소배출이 적어집니다.
즉, 2~3년 이상 운행하면 전기차의 ‘탄소 절감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셈입니다. 이 시점을 ‘탄소 균형점(Carbon Break-even Point)’이라고 부르며, 재생에너지 확대와 배터리 기술 향상으로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10장. 결론 – 숫자로 증명된 진짜 친환경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탄소배출량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평균적으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60~70% 낮은 탄소를 배출하며, 탄소절감 효과는 주행거리와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더 커집니다.
물론 배터리 생산과 전력 구조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현재 기준에서도 전기차는 이미 ‘탄소 효율’ 면에서 내연기관차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차량 선택은 단순한 이동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진짜 친환경차는 배출이 없는 자동차가 아니라, 전체 생애주기에서 가장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답은 분명히 전기차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